주님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민감한 작업임을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아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들인데, 그것으로 마음이 둔하여지면 그 주님의 재림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하여 주님을 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1:34-36은 경고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첫 번째 함정: 방탕함
방탕함은 쾌락에 빠지는 것입니다. 끝없는 유튜브 영상, TV 시청, 넷플릭스 시리즈, SNS 중독, 게임 몰입, 이것들이 우리 시간과 영혼을 삼킵니다. 저녁에 “잠깐만”이라며 핸드폰을 든 것이 새벽이 됩니다.
주말에 “조금만 쉬자”던 것이 주일 예배를 놓치게 만듭니다.우리는 즐기느라 영혼이 말라갑니다. 성경은 펴지지 않고, 기도는 사라지며,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중심에서 밀려납니다. 방탕함은 조용히, 은밀하게 우리의 영혼을 죽이며 처음사랑을 사라지게 합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디지털 바벨론의 노예가 되어 있으며 바벨론 음녀의 포도주에 취해 세상의 음녀로 변해갑니다. 그리스도는 잊혀지고 세상의 음녀가 크게 보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무서운 일입니다.왜냐하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영적 간음이기 때문입니다. 무심결에 TV부터 켜 놓는 습관, 핸드폰부터 보는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발견하십시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인데, 세상의 음녀를 더 보고 싶어하는 욕망에 불을 붙입니다.
그러므로 방탕함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랑을 배신하는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는데,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고 죄를 따라간다면, 이것은 그분의 사랑을 짓밟는 영적 간음입니다.
“간음한 여자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죽었다고 표현합니다.이것이 법입니다. 이것이 신랑과 신부 사이의 언약입니다. 이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전부 세상이라고 정의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은 전부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세상을 능히 피하십시오! 그것은 음녀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이 "세상" 한가지만 가지고도 우리 마음을 둔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감각을 잃습니다. 주님이 잘 생각나지 않으며 주님에 대한 처음사랑이 식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감동이 없습니다. 기도해도 공허합니다. 죄를 지어도 양심의 가책이 무뎌집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살아 있지만 마음이 둔하여 지면(눅 21:34) 주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실제로는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계 3:1). 깨어있지 못한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한 자는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맞이할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를 깨어 있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을 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께 집중하고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보지 말고 성경을 여십시오. 출근 전, 식사 후, 자기 전, 시간을 정하고 지키십시오. 이것이 영적 생존의 문제입니다.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이라는 사자 굴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니엘의 습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