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감정에 따라 반응한다는 것은, 내 영혼의 주권을 '내 눈앞의 환경, 타인의 말, 과거의 상처'에 넘겨주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면 분노하고, 일이 안 풀리면 낙심하며, 불안한 소식이 들리면 두려워하는 것은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내 영혼의 주인이 되어 나를 조종하게 두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기뻐하라"는 명령을 의지적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영적 주권의 이동이 일어납니다.
즉, 의지적 선택으로서의 기쁨은 세상이 내 마음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영적 주권을 선점하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마귀가 상처받은 성도를 공격하는 가장 교묘한 전략은 "네 감정이 곧 너의 진짜 상태다"라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을 뛰어넘어 의지적으로 기쁨을 선택할 때, 마귀의 사슬이 깨어집니다. 감정은 "아프다, 절망이다"라고 말할지라도, 의지로 "아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으며,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부활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한다! 나는 나는 주 안에서 왕노릇하는 자다!"라고 십자가 진리를 선택하여 선포하는 순간, 마귀의 모든 속임수는 무력화됩니다.
감정대로 사는 것은 결국 '내 자아(Feeling)'가 내 삶의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내 기분이 좋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 기분이 나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아닌 '내 감정'을 섬기는 셈입니다.
하지만 내 육신은 지금 당장 울고 싶고, 불평하고 싶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은 감정으로 솟구칠 때 — 그 감정과 욕망(자아)을 꺾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쁨을 선택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영적 실천입니다.
이처럼 감정을 거스르는 의지적 기쁨은 "내 자아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라는 고백을 삶으로 증명하는 가장 깊은 영적 예배가 됩니다.
감정은 선택이 가능한 명령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리라!" 선택하면 기쁨이 생깁니다.
구름이 태양을 가려도 태양이 여전히 떠 있듯, 상처와 통증의 감정이 내 마음을 가려도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느껴지는 감정에 속지 않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말씀) 위에 내 의지의 뼛속까지 닻을 내리는 것 —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에 담긴 거룩하고 강력한 영적 비밀입니다.